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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보다는 <어쩌다 한국인>Bookmark 2016. 1. 8. 18:25728x90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책이 있다. 몇몇 기자들이 2015년 도서로 추천할 정도로 인기있는 책이기도 하다. 한국소설이 일본소설을 제치고 추천서로 올라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떠밀려 떠나는 청춘들의 이야기라고 하니 선뜻 읽고 싶지 않았다. 뻔히 아는 주변의 절망을 소설에서까지 반복해서 겪고 싶지 않아서다. 이 땅의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한 청춘들에게는 한국은 정말 최악일 뿐일까.
그러다 교보산책길에서 내 한탄을 읽어낸 책 제목을 만났다. <어쩌다 한국인>
'왜?! 어쩌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평범한 미래를 상상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야 하나' 생각하던 요즘이었다. 나는 책 제목에 공감하며 주저없이 들었다.
<어쩌다 한국인> 허태균 지음. 중앙books.
저자의 현실인식은 <한국의 싫어서>와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씁쓸한 좌절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공감하면서도 성적표를 들킨 것처럼 뜨끔했다. 지금의 답답해보이는 현실을 만든 한국인 개개인을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정한 시스템이나 몇몇 정치인, 소수 사회 지배층이 우리나라를 망쳤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문제가 너무 빈번하게,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권력이 많은 사람이 저지르는 비리와 말단에 있는 공무원이 저지르는 탈선이 동일한 무게를 지닐 수는 없다. 두 행위 모두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한 개인으로서 인간의 유전자와 한 마리 원숭이의 유전자는 98퍼센트가 일치한다고 한다. 그 작은 2퍼센트 차이가 현재 전 세계 70억 인구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의 모든 인간의 수만큼 누적될 때, 그 누적된 차이가 바로 인간 전체와 원숭이 전체의 지적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게다가 단순 누적이 아니라 그 상호작용과 증폭효과까지 계산한다면, 사실은 한 인간과 원숭이의 차이가 아닌 인간 세상과 원숭이 세상 사이의 엄청난 차이는 그 2퍼센트 차이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 대수롭지 않을 것 같은 우리 한국 사람들의 별것 아닌 능력, 작은 특성, 사소한 선호, 자그마한 편향, 의미 없는 습관은 바로 5,000만의 증폭효과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행복한 지옥을 만들어 왔다.
(p.29)
주체성, 가족확장성, 관계주의, 심정중심주의, 복합유연성
저자는 한국인의 심리를 6가지의 키워드로 이야기한다. 이 모든 심리적인 특징을 우리 사회의 '동력'이라고 표현하며 긍정적인 시각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이런 특징들에 대해서 "이게 정말 잘 살고 있나?" 회의감이 들 수도 있지만,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가 놀랄만큼의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저성장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 역동성이 덜한 사회에서는 성공도 천천히 일어나기 때문에, '개천에서 용나는' 사람이나 인생역전의 사례들이 예전보다는 적게 나타난다. 지루한 저성장 시대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은 현재의 한국인들을 깊숙히 바라봄으로써 삶에 대한 가치나 태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보자고 한다.
느린 사회가 천국이 되려면,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도 같이 느려져야 한다. 그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단시간 안에 인생역전을 꿈꾸지 않으며, 물질적 성공에 매달리지 않고, 성공이나 성장 이외의 개인적 가치를 추구하고 원칙과 규범에 의해서 자신이 손해 보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하나 이상의 외국어를 하고,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으며, 근사한 요리 실력을 소유하고, 사회적 정의에 민감하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라고 한다.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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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국인이지만, 책의 표현을 빌어 아래의 감상을 '한국인'이라고 썼다. 아래 글을 읽을 때 마치 나는 외부인인냥 읽힐 수 있는데, 이해하시길 바란다.)
주체성이 강한 민족?
주체성을 설명하면서 일본과의 비교해 보여준 사례가 게임 방식이다. 한국인은 게임 속에서도 어떻게든 강해지고 높은 레벨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반면에, 일본은 한번 서열이 정해지면 그 서열 그대로 그 범위 안에서 행동한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런 특성을 가진 한국인들은 어떤 결정권과 통제감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그래서 정해진 메뉴얼대로만 행동이 제약받을 경우 쉽게 무기력해진다고 한다.
나는 이 챕터를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과거에 비해 자신의 자율성을 확인할 수단이 없어진 한국인들은 다소 이상한 곳에서 이런 열정을 발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스토리를 댓글로 바꾼다던지, 커뮤니티에서 다른 커뮤니티를 향해 댓글 공격으로 자신들의 집단을 확인한다던지 말이다. 드라마에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드덕'의 입장에서 어느정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주체성을 폭력으로 확인한다는 지점이 이해가 잘 안갔다. 온라인의 공격으로 사람이 죽기도 하는데. 왜 이런 주체성을 정치적인 참여 등, 긍정적인 권리 행사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못하는 걸까? 수만 명이 모여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만족감을 왜 보다 사회를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에서 느끼지 못하는 걸까?
나쁜 문제 해결 방식에서 보이는, '관계주의' 심리
어느새 우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대하고 있다. 사회 문제는 곳곳에서 벌어지지만,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미디어가 문제를 조명하면, 사건이 터진 집단에서는 국민들의 속풀이를 해 줄 그럴싸한 '나쁜놈'을 내보내는 식이다. 이것이 미봉책에 불과한 이유는, 그 근본원인을 확실히 짚어내지 않고 집단의 마녀를 잡아버리고 사건을 잊어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실 동양인들은 사건을 접할 때 주변 상황을 살피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은 특유의 '관계중심적' 사고가 강해서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또한, 큰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에는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거물이 일으켰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마녀를 잡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식으로 단순히 문제를 해결해서는 미래의 비극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는다. 사건의 배경에는 사람보다 더 복잡한,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 이를 외면해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1
관계주의 키워드에서 흥미롭게 보였던 대목은 한국인과 관련한 사과의 기술이다. 한국인은 사과에 대한 기대가 크다. 스쳐도 '스미마셍'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쉽게 사과하지 않는다. 고민없이 사과하면 안 하느니보다 못한 사과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심정, 진심이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그 '진심'과 '진정성'을 느껴야 사과가 비로소 효과가 있다. 한국인의 사과에는 고난도의 기술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마음을 담아야 상대방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으로, 운 좋게도(?) 미래에도 한국에 있을 예정이다. 이 책은 앞으로 내가 함께 살아갈 '한국'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실용서로 읽혔다.이곳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나가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사회를 만든, 우리의 심리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평소 미디어를 접하며 불합리한 사건 사고를 보면서 이해가 가지 않았던 사건의 단서를 얻는 기쁨도 있었다.
'나의 부모님 세대는 이런 식의 심리 구조를 가지고 있구나, 그래서 그렇게 행동하고 있구나'
한국인의 심리를 파악해 내 생존에 이용할 수도 있고, 이 심리를 기반으로 상대를 설득할 수도 있다. 앞으로 이 앎의 기술이 후자에 많이 쓰이는 경험을 했으면 한다.
- p.17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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