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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시대의 일상
    Bookmark 2020. 4. 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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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를 끼고 사는 삶을 산다. 특히, 넷플릭스. 영어공부한다는 핑계로 구독하였는데, 넷플릭스 컨텐츠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 무료한 일상이 좀체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자주 본다. 그럼에도, 그 화려하고 대단한 이야기들을 품은 영상이 어느 순간 내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책을 읽는다. 책을 달콤하게 읽는 순간이 잦아졌다. 고미숙씨의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를 완독하고 무슨 책을 읽을까, 리뷰 영상들을 기웃거렸다. 요조와 임경선의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15년정도 더 먼저 산 언니들의 이야기. 코로나 시대의 낯선 만남들은 감염 우려로 공포로 다가왔는데, 이 책의 우정 이야기에 기대서 낯선 마주침을 대리만족하고 싶었다. 

      평소 같으면 대형서점으로 향했을 것이다. 광화문 교보문고. 평소 같으면 책 수십장을 직접 읽어보고 바로드림으로 결제하곤 했다. 코로나 시대에 대형서점 또한 2차 감염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더욱, 대형서점처럼 여러사람에게 접근성이 큰 공간이면 그런 위험도가 높을 것이다. 구매할 목적으로 동네 서점을 서치했다. 운좋게 내가 사는 동네에는 독립서점이 많다. 공간의 주제에 맞게 적절히 배치된 책들이 있는 곳이 독립 서점이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찾는 책이 없을 경우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책이 있으면 사고 없으면 말지라는 마음으로 서촌의 서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1년 여전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만났던 서점의 문을 열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들어서자마자 그 작가를 떠올렸다. 설마 여기에 아직 계시진 않겠지. 들어서자마자 이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그 작가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참으로 크다는 이유로, 이미 작가와 얼굴을 텄다는 게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살짝 모니터 옆으로 삐져나오는 옆 태가 작가님임을 한 눈에 알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에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늘 동경해왔고 좋아해왔다. 그런 사람들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짜릿함이 느껴진다. 아마 작가님은 코로나로 사회 전체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상상해야 하는 국면에도 거기서 무언가를 했을 것이다. 개인적인 작업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계실 것이다. 요즘 내 마음이 그렇게 굳건하지 않아서일까. 작가님을 보는 그 순간, 그 묵묵함을 다시 새기게 되었다. 그래,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그 묵묵하고, 지독할만큼의 성실함. 그것을 내 안에서 발견하고 다시 그 자세를 일깨우며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 책방에서는 요조와 임경선의 책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작가님의 모습을 보는 내 마음에는 가로수에 움트는 새싹들이 피어나게 되었다. 

      다행히, 그 근방의 또 다른 책방에서 다행히 내가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책을 이끌고 주변의 까페에 가서 단숨에 읽었다. 오디오로 기획된 책이기 때문이었을까. 문장 하나 하나가 어렵지 않았다는게 책의 매력이었다. 까페에서 절친한 언니들이 이야기하는 테이블에 껴서 그 이야기를 엿듣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책의 표현대로 '낙타와 펭귄'과 같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공개 편지를 쓴다. 임경선이 세계관이 좀 완고해서 구분이 확실한 사람이라면, 요조는 그 날의 느낌대로 유연하게 사는 듯한 느낌의 사람이다. 아 물론, 글에서 풍겨지는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친해진 계기가 트윗 친구의 조촐한 저녁식사 모임이라고 했다. 요조가 임경선이 패널로 나왔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애청자였고, 그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똑부러질 수 있을까 감탄해 그 모임에 적극 뛰쳐나갔던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건 어쩌면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오래전부터 짝사랑해왔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계기든지 그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계속해서 호기심이 무한대로 뻗어나가고 그 사람의 어떤 모습을 닮고 싶어하는 마음. 나도 개발 공부를 하고 어떤 분을 만나고부터, 그 사람을 짝사랑하고 있다. 이 사랑의 성격은 에로스에 기반한 이성애적인 사랑이라기 보다는, 존경스러움에서 움트는 사랑. 그 분의 재능의 탁월함과 일에 대한 근면함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겸손함에 반했다. 이 분과 언젠가 친구가 될 날을 기다린다. 다만, 임경선과 요조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는 공통영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존경스러운 사람과 좋은 친구 혹은 사제관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나도 그만큼의 공통영역을 평소에 잘 가꾸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선물 같은 저녁 식사 자리에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있게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 시대의 일상은 많은 것들을 뒤바꿔 놓는다. 대형서점에서 독립서점으로, 유흥가에서 동네로, 사람들이 모이는 허브에서 변두리로. 혹자는 코로나가 2020년을 뒤덮을 거라고 말한다. 전파되는 속도에 따라서 코로나가 장기화될지, 아니면 상반기로 일단락될지 결정되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쉽게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가 주는 일상의 위축감에 답답하고 때로는 우울하기도 하다. 이 시간이 주는 성찰을 되새기며, 나만의 코로나 시대의 생존법을 만들어야겠다. 는 식상한 멘트로 오늘의 끄적거림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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