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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소설로 만나고
    Bookmark 2016. 8. 1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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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방사수하는 드라마였다. '드덕'까지는 아니지만, 매주 주말을 마무리할 수 있는 드라마였다. 금,토요일 여름밤에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서 매회 노희경 작가님에게 감사했다. 70분이 3분 같은 드라마는 내가 감히 접할 수 없는 노년의 삶을 느끼게 해준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한국에 살고 있는 노인들을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다뤄준다. 점점 많아지고 있는 노인들은 이야기에서 주변부에 놓이거나 다큐에서나 무거운 주제로 다뤄지곤 했었다. 물론 <디어 마이 프렌즈>의 노인들이 대다수의 노인들보다 경제적인 면, 사회적인 면에서 상향평준화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이 겪는 고민이나 삶의 무게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에는 총 8명의 노인의 삶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게 보는 인물은 문정아(나문희 역)와 그녀의 절친 조희자(김혜자), 그리고 정아의 남편 김석균(신구 역)이다. 김석균은 꼰대 오브 꼰대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남자다. 가끔 우리 아빠 혹은 할아버지의 모습이 겹치기도 해서 더 감정이입해서 보았다. 석균은 자기 집 식구밖에 모른다. 아 물론, 여기에는 핏줄이 섞인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 부인은 거의 시녀처럼 부린다. 아내에게 밥 차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며, 물이나 옷가지까지 부인의 손이 없으면 찾을 줄을 모른다. 자기 부모가 아플 때는 부인에게 병수발 다 시키더니, 정아네 엄마가 아플 때는 요양원에 보내게 한다. 그런 도중에 정아가 도망갈까봐 한 마디로 달콤하게 회유한다. "내가 다 끝나면 유럽여행 보내줄께." 그런데 모진 날들이 지나간 후에도 남편은 유럽여행에 대해서 이렇다할 말이 없다.



      스토리에서 대게 조연의 역할을 했던  명품 연기자들이 중심으로 들어오니 연기가 더 빛난다. 그동안 어찌 이 빛을 숨기고 사셨을까. 30~40년 연기해오셨던 경륜이 묻어났던 표정 연기였다. 김석균을 연기했던 신구할아버지. 여자로서 밉상으로밖에 볼 수 없는 캐릭터였는데 그가 연기하니 거부감보다도 안타까움이 더 느껴졌다. 크지 않은 눈(?)으로도 감정전달은 충분히 되었다. 회한스러운 감정을 연기할 때 인간이 느끼는 허망함이 표정 그대로 느껴져 눈물을 흘리며 봤다.


       <디어 마이 프렌즈> 소설은 드라마가 종영한 뒤에 나왔다. 소설을 읽으면서 연출자가 꾸려놓은 공간과 주인공들이 활자 위에서 떠다니는 경험을 했다. 누군가가 힘껏 상상해놓은 세계였으므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책을 읽은 거다. 소설로 즐기며 다시 영상 클립을 통해서 감동적인 부분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내가 상상한 부분과 연출자가 상상한 부분을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었다. 드라마보다 소설이 좋았던 점은, 50분 가까이 되는 매 회의 이야기 중에서 집중하고 싶었던 대사에 맘껏 쉴 수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에서 노희경 작가의 대변인이라고 볼 수도 있는 작가 박완의 문장이 그랬다. 그녀가 노인들의 삶을 관찰한 후 술회하는 부분이 특히 인상깊었기에 이 부분을 필사하면서 읽었다.



    나중에 희자 이모에게 물었다. 늙은 모습이 싫다며 왜 화장도 안 하고 사진을 찍었느냐고. 희자 이모가 말했다. 친구들 사진 찍을 때 보니,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자신들에겐 가장 젊은 한 때라고. 인생에서 가장 젊은 그 순간을 기념하고 싶었던 이모의 그 마음이 내 심장에 따스하게 와 닿았다. 그리고 누구에게든 지금 이 순간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는 소중한 진실을 알게 해준 이모가 무척이나 근사해 보였다. (p.131)


    '감히 어린 내가 뭘 다 안다고' 부분 중에서...

    사고 현장을 다시 찾아간 정아 이모를 보고도 나는 '미쳤어 진짜, 늙은이들이... 자수 안 하면, 피하면, 뭘 어쩌겠다고! 그래, 맘대로 해, 맘대로! 늙어가지고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니고. 뻔뻔스러워, 정말!' 하고 함부로 떠들어댔다.


    그 순간순간들이 내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이모들은 결코 뻔뻔하지 않았다. 감히 칠십 평생을 죽어라 힘들게 버텨온 이모들을 어린 내가 다 안다고 함부로 잔인하게 지껄이다니, 미치도록 후회스러웠다. 내가 몰라 그랬다고, 내가 철이 없어 그랬다고, 정말 잘못했다고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었다. (p.179)




      이 드라마와 소설은 내게 한 편의 드라마를 넘어서 예술 작품이었다. 내가 노인에 대해 가지는 감수성이 조금은 달라졌으니까. 힘든 세월을 억척스럽게 견뎌오시며 살아온 인생이 거의 대부분의 노인들의 삶이었다. 그곳에는 인간의 여러 희노애락이 겹쳐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사랑과 우정과 그리고 잊어야만하는 슬픔들이 중첩된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작가가 바라보는 노인들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서 무심했던 나의 태도가 조금은 누그러지고 있었다.



      노희경씨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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