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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산하 박사의 밀림 관찰기. <비숲>
    Bookmark 2016. 5. 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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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숲> (김산하, 사이언스북스, 2015)



    시간이 많았던 대학교 1학년 때 이런 저런 잡지들을 읽었었다. 그 때 알게된 접한 "1/N"이라는 잡지가 있다. 그래픽 노블 작가 김한민씨가 편집한 잡지라 표지에서부터 잡지 디자인까지 그림들이 참신하고 독특했다. 그 잡지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작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있어서 좋았다. 지루한 입시를 끝낸 수험생의 입장에서, 그 잡지는 내게 세상을 보는 재밌는 시선을 제공해 주었기에 한 계절을 기다리는 이유가 되기도 했었다. 우리나라에도 정해진 답이 아닌 다른 답을 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려줘서 반가웠기도 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발행되는 잡지를 서점에서 구입해 읽을 때마다 먼저 찾게 되는 필진들이 있었다. 김한민씨의 형이기도 한 김산하 씨의 글도 그 중 한 분이셨다.  


    그 글에서는 한국인들의 연애를 다른 문화권과 비교하며 분석했고, 또 어떤 글에서는 동물들의 사랑과 비교해 설명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주제에 늘 연애가 있었던터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연애를 이런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구나.


    그의 사회적 직업은 '긴팔원숭이 박사'다. 오늘 읽은 <비숲>의 띠지에 그는 '동물과 자연을 삶의 주제로 삼고 연구, 집필, 운동, 창작을 하는 활동가이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는 오로지 긴팔원숭이를 연구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열대우림 구눙할루문 국립공원에 간다. 그곳에서 무려 2년 동안이나 머무르며 하얀털로 뒤덮힌 긴팔원숭이를 연구한다. 웬만큼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내릴 수 없는 모험이다. <비숲>은 그가 밀림에서 머물면서 쓴 기록이다. 픽션이 아닌 글이라서 문장하나가 생생함을 느꼈다. 종종 밀림의 소리가 들렸고 저자의 땀내가 나기도 했다.


    먼저 생태 현장에서 자연과학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다. "이곳에 동물이 x마리가 있다"라는 문장을 쓰기 위해서 그들은 연구대상을 끊임없이 뒤쫓기도 한다. 동물이기도 한 인간을 연구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과학자 본인이 학문을 사랑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일과다. 저자도 날개를 갖지 않은 동물 중에 가장 빠른 긴팔원숭이를 따라잡기 위해 길이 없는 밀림 위를 뛰어다닌다. 시선은 나무 위의 긴팔원숭이들을 고정시킨 채 한 손에는 검은 칼을 쥐고 앞의 수풀이나 덤불들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매일매일이 만만치 않았다. 우선 긴팔원숭이들은 절대로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어찌나 다니길 좋아하는지 쉴 틈이 없었다. 이 나무에서 한 입 베어먹고선 곧 저 나무로 옮겨 가고, 별 뚜렷한 이유도 없이 영역을 횡단하기도 했다. 가장 괴로운 건 밥 먹다 말고 쫓아가야 할 때였다. 녀석들이 잠시 쉬어 가는 분위기인지 잘 살펴 상당히 확신한 다음에만 도시락 뚜껑을 열지만, 그래도 느닷없이 어디론가 출발하는 바람에 입에 밥을 잔뜩 물고서 달려가야 할 때가 있다. 또 숲에서 나를 반기는 이는 나에겐 별로 반갑지 않았다. 벌레들의 끊임없는 웽웽 소리는 귓전에 맴돌았고, 모기와 덩달아 피를 빨아 먹는 쇠파리, 눈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날파리도 우리를 괴롭혔다. 그래도 송충이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송충이 털에 피부가 한 번 잘못 닿으면 엄청난 가려움에 거의 경기가 들 정도였다. 더위와 습기는 언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난 좋았다. 내가 태어나서 해 봤던 가장 힘든 일이었지만 그토록 오래 꿈꾸던 곳에 이렇게 버젓이 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된 거였다.

    <비숲> (p.46)



    이 책은 저자가 직접 밀림을 그린 컬러풀한 그림으로 시작하는 총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긴팔원숭이들이 일렬종대로 늘어서서 서로의 털을 골라주는 모습이 묘사된 장은 5장 '사랑'이다. 저자는 이 장에서 영장류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씻고 먹여주는 것처럼 긴팔원숭이들은 자식들에게 털고르기를 해준다. 저자는 A그룹 아스리(저자가 관찰하고 있는 긴팔원숭이 이름)가 양 부모에게 양쪽으로 털고르기 서비스를 받는 것을 보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한다. '애가 버릇 나빠지는 건 아닐까?' 긴팔원숭이 가족을 보며 인간의 사랑을 생각하고, 그들과의 공통점을 생각한다는 점이 재미있었던 장이였다.



    저자의 필력때문에 고르게 된 책이었지만, <비숲>을 덮고 나면 지구의 존재하는 수많은 자연을 마주한 듯하다. 저자의 시선으로 자연을 보면 동물을 사랑하게 된다. 긴팔원숭이를 친구처럼 묘사한 덕이기도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동물학자'로서 동물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깊게 고민해온 문장때문이다. 그는 연구를 목적으로 동물을 박제하느니 그림을 그리는 편을 택한다. 그림을 그리며 동물을 묘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동물이 속해있는 환경, 먹이에 대해서 공부하게 된다는 그의 설명이다. 그래픽 노블 작가인 동생만큼이나 그림을 잘 그리게 된 것도 어쩌면 동물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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